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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사람의 죽음은 숫자로 기억될 수 없다
작성자 코코 등록일 2022-11-14

어김없이 11월이 오고 말았다. 1년 전,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달... 그날 까지 하루 하루 카운트다운을 하듯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 중이다. 어쩌면 그렇게 작년 처럼 비가 오기 시작하는지... 작년엔 딱 이 맘 때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12월 1주차 까지 비가 끊인 적이 없었다. 그래서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.

 

그 친구를 떠올릴 때 마다 사는 게 뭔지를 생각하곤 한다. 너무 건강하고 밝았던 친구, 아무도 그렇게 찬라에 떠나갈 줄 상상도 못했던 녀석...

 

참 부지런했고 열심히도 살았고 신랑과 아들녀석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.

시장에서 사온 고추 한 봉지를 뜯어 좋은 건 자기 신랑이랑 아들내미 먹인다며, 상하고 못생긴 녀석들만 고르고 골라 먹던 녀석... 정작 신랑과 아들 녀석은 고추를 좋아하지도 않고, 더욱이, 유학간 아들 녀석은 한국에 돌아 오려면 몇 달은 더 있어야 하건만, 그게 어미 마음인가 싶었다.

 

나와는 거의 정반대의 성향과 성격을 가진 친구였다. 늘 뭔가에 분주했고, 기뻐했고, 안타까워했으며, 십대 계집애 마냥 들떴다가도, 또 금방 슬퍼져 칭얼대곤 했던 친구... 말도 많고, 느끼는 감정도 풍부하고, 표현도 풍부했던 장난감 바구니 같던 그 친구와 한 시간만 함께 있어도, 마치 하루를 꼬박 붙어있던 것 마냥 기가 빨리곤 했다. 그래도 그 친구와 있으면 언제 시간이 간지 모르게 지루함 없이 즐거웠다.

 

그런 친구가 떠나고 받았던 충격은 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조차 없었다. 그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, 그 친구가 알았고, 그 친구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또 그들과 얽힌 그 많은 시간들이, 그 거대한 이야기가, 노래가 그림들이,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정말 가슴이 무너진다는 표현 그대로 나는 심각하게 무너져 내렸었다.

나는 지금도 가끔 그 친구 사진을 꺼내 보며 옛날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. 그 때마다 처음엔 또다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에 힘들었지만,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그 친구에 대한 좋은 기억들과 이야기들로 무너졌던 가슴을 채워지게 되는 거 같았다.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깨닫는다.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남겨진다는 의미는, 상실감만이 아닌, 그 사람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더 많은 이야기와 노래와 그림들을 새롭게 나누고 부르며 그릴 수 있는 것임을... 이것이 어쩌면 이별을 하고, 이별을 받아드리며, 또 그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임을...

 

 

 

10. 29참사에 희생자들 위패와 영정 사진이 없도록 한 정부의 방침은 일견 이해가 간다. 누군가의 죽음이 단순히 156이란 숫자 중 하나의 의미일 때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가진 존재로써의 죽음의 의미는, 분명 그 죽음을 대하는 이들이 받을 슬픔과 충격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.

지금 당장은 그렇게 숫자들의 죽음으로 막연하게 넘어감으로써, 정부가 떠안아야 할 당장의 부담은 줄일 수 있을 지 모르겠다. 그러나, 어느 한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숫자 하나로써의 의미 정도로 단순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가 유지될 수도 없다. 그리고 그 사람의 죽음을, 이별을 받아드리는 남은 이들이 거쳐야할 과정은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하고 또 당연히 거치게 되어있다.

오히려 숫자로써 느끼는 지금의 156명의 죽음이란 것이, 먼 나중에라도 한명, 한명의 이름과 형상을 가진 존재들의 죽음으로 인지하게 되는 순간, 대중들이 받을 충격은 지금 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 지속되리라 믿는다.

그래서 현 정부의 지금과 같은 결정이 그리 현명했다고 생각치 않는다.

 

참사로 수많은 사람이 떠나간 이태원 뒷골목은, 비록 빗물에 씻겨질 수는 있을 지언정, 그 한사람 한사람의 죽음이 남긴 우리들의 이야기와 노래와 그림들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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